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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이제는 K아트의 시간이다

TV에서 보기만 했는데도 그 특유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졸업식, 생일 등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이 함께 먹던 짜장면의 탄생 과정을 넥플릭스에서 방영한  ‘짜장면 랩소디’를 통해  보니 늘 먹던 짜장면인데도 새삼 달라 보인다. K푸드의 버라이어티를 느꼈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25일부터 공개하는 전시회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 장 박사와 아들 캐머런 장 박사 콜렉션’에서 만난 한국 고미술품들도 그렇다.       LACMA는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올드 타이머이자 사회공헌 활동가인 체스터 장 박사와 그 아들이 지난 2021년 LACMA에 기증한 한국의 고미술품 중 35점을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하는 작품은 불화, 서예, 남북한 화가들이 그린 희귀 유화, 고려(918~1392)와 조선(1392~1897) 시대의 도자기 등이다.     지난 20일 LACMA에서 준비한 전시관을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찾았다.     다소 작은 규모의 전시관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들은 화려하거나 눈길을 확 끄는 강렬함은 없다. 한국에서 성장한 1세 이민자라면 평소에 흔히 보던 물건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각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전시관 입구 중앙에 자리한 청자 항아리는 다른 청자와 달리 뚜껑이 있다. 크기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청자와 비교해 2배 가까이 크다. 그렇기에 이처럼 완벽한 모양으로 빗어진 청자는 굉장히 드물고 귀하다는 게 LACMA 아시아 박물관장이자 큐레이터인 스티븐 리틀 박사의 설명이다.     그 뒤에 전시된 금강산을 빼닮은 수석은 무게만 80파운드가 넘어 성인 남성 2명이 들어야 한단다. 하지만 이렇게 무거운 돌을 받치고 있는 나무 받침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금도 뒤틀리거나 부서지지 않았을 만큼 단단하다.     책거리는 책을 사랑한 한국인들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병이나 장식품에서 계절을 볼 수 있다. 서양 문물을 갓 받아들였는지 미세한 명암의 변화도 찾을 수 있다. 리틀 박사는 책거리를 가리키며 “방문자들은 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마치 그림 속 한 부분처럼 새겨놓은 걸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 가난과 배고픔으로 힘들어도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의 삶도 전시된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나뭇잎이 다 떨어진 길을 훠이훠이 걸어가는 두 선비의 뒷모습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다 드러나지만 커다란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소의 그림에서는 강인한 한국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실향민과 탈북민들에게는 스산한 모습의 경성 바닷가와 이름 모를 고궁의 산책길을 담은 작품을 통해 고향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리틀 박사는 “이중섭, 이쾌대 등 한국 근대미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화가들이 일본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스타일의 화풍을 배웠다. 그리고 빠르게 그것을 자신들만의 화풍으로 만들어 그려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은 19세기 프랑스 시대를 주름잡던 모네, 시슬레, 세잔 등과 겨뤄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회를 직접 기획한 리틀 박사의 바람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1세와 2~3세들의 한국 미술에 대한 교감이다.   리틀 박사는 “K팝이나 K드라마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을 지키고 전해 내려온 문화가 바탕이 됐다”며 “바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이 그 바탕이다. 많은 분이 보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LACMA에서 출발하는 '한국의 보물들'을 시작으로 이제는 K아트의 시간이 열리고 있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아트 시간 한국 고미술품들 한국 근대미술 한국전쟁 직후

2024-02-22

[수필] 대중이는 어디 있을까?

네 살은 되었을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많이 울었다. 간호사가 안아 주어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큰 소리로 오랫동안 울다가, 간호사 누나 가슴에 안겨 잠이 들었다. 잠 속에서도 아이는 흐느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대중’이라 했다. 한문으로 大衆(대중)이었는지, 한국의 15대 대통령 김대중 씨의 이름을 딴 對中(대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大)라는 글자는 아이가 넓은 마음으로 배포 있는 장군처럼 살라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었을 것 같다.     오십 년 전, 겨울처럼 춥던 어느 가을밤에 경찰 아저씨의 팔에 안겨 한 살도 안 된 꼬마 아기 네 명과 함께 서울시립아동병원 문턱을 넘어왔던 아이이다. 당시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인턴이었던 나는 시립아동병원에 파견 나가 있었다. 경찰 아저씨는 그날 밤도, 여느 날처럼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걷어왔다.   대중이는 큰 첫 번째 입원실에서 며칠을 보내고,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옮겨졌다. 말을 할 수 있던 대중이는 텔레비전의 이름도 알았다. 당시 한국에는 텔레비전이 집마다 있던 때가 아니었다. 그로 보아 그 아이는 밥깨나 먹는 집에서 자라던 아이이었을 터인데, 왜 버려졌는지, 아니면 어쩌다 길을 잃었던 것인지, 그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가 왜 없는지, 우리는 안타까웠다.     파견 근무가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간 햇병아리 인턴들은 계획되어 있던 전문분야의 길을 떠났다. 나도 대중이와 그의 시립아동병원 친구들을 뒤로하고 얼마 후 도미했다. 나는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살면서 어린 시절 한국에서 고아로 자랐다는 성인들, 또 고아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준 양부모들도 만났다. 6·25 한국전쟁 즈음 고아가 된 분들은 전쟁 73주년이 된 올해 거의 80살이 되어가고 있고, 대중이처럼 1970년대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은 4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6·25 한국전쟁으로 남북한 합쳐 10여만 명의 전쟁고아가 생겼다. 대중이가 구제되었던 1972년 즈음에도 한국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붙여졌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1955년부터 2021년까지 64년간 16만 9454명이 해외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북한 고아의 통계는 많지 않지만 윌슨센터(Wilson Center)는 1952년부터 1959년까지 6·25 전쟁고아 3만 명이 공산권 동맹국인 항가리, 로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동독, 몽고, 중국에 보내져 교육받고 양육되었다고 한다.(2020년 6월 18일, 서강대학교 홍인택) 그들은 국가 관념에 대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전원이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AP 뉴스(김형진.Monika Scislowska 6월 23일 2020년)에 짤막한 내용이 실린 것을 보았다. 한 명은 김일성대학에서 러시아어 교수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폴랜드어 교수로 일하고 있었고, 그 외에 세 명은 폴란드 외교관을 지냈다는 내용이었다. 3만 명 중 겨우 이 정도만 소식이 있을 뿐이다.   6·25의 상흔이 깊었던 한국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나에게 2023년 여름은 특별하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만나게 된 특수한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한미 두 국가 간의 연계는  6·25로 시작된 것이기에 전쟁터에서 숨진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잊을 수 없지만, 이 참상에 대한 기억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전장에서 산화한 젊은이들의 남겨진 자녀들을 만났다. 평범 속에 흡수된 그들이지만, 실상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 젊은이들이 남기고 간 아이들은 쉬이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무척이나 애썼을 것이다.     내가 만난 특별한 두 여성 중 한 분은 한국전쟁 직후, 미국 흑인 가정에 입양되었던 샌드라 윈덤 여사다. 그는 은퇴 교사이자 작가다. 다른 한 여성은 윈덤 여사와는 달리, 나의 환자 대중이처럼 1970년대에 홀트 양자회를 통해서 백인 양부모에게 입양된 분이다. 그는 DNA로 따지면 순수 한국인 여성으로 지금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아내이고 엄마이다.     윈덤여사는 LA총영사관과 UCLA가 합동으로 개최한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스피커로 초대되었던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흑인 병사와 역시 누구인지 모르는 한국인 여인 사이에 태어났던 혼혈아로 삶의 첫 4~5년을 가난하고 인종차별이 심했던 한국에서 ‘깜둥이’라는 놀림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인 흑인 병사는 미국인일 수도 있고 에티오피아인일 수도 있다고 그녀는 자신의 책에 설명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녀가 쓴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책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불합리함도 지적하고 있다. 또 부모, 국가라는 테두리, 종교, 교육, 문화의 이질감 등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또 있다. 미디어를 통해서 본 뉴욕 부교육감 알렉사 앨번, 부시 펠로우십 수상자 캐서린 대출러, 김 파크 넬슨, 펜실베니아 소도시 시장 제니 안토니비츠, 비키 플린켄 스미스 검사, 그리고 내셔널 풋볼리그 버펄로 빌스 공동구단주 킴 페굴라를 보라.     부모를 잃은 고아(孤兒)였는지, 부모가 버린 기아(棄兒)이었는지, 아니면 뜻하지 않게 부모를 잃은 미아(迷兒)이었는지 더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암울했던 초창기 운명을 양부모들과 함께 반전시킨 멋진 사람들이다. 오십 즈음이 되었을 대중이도 그렇게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사랑과 신앙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큰지를 한국 출신 입양아 영웅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월화 / 수필가수필 한국전쟁 직후 백인 양부모 서울시립아동병원 문턱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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